일상 것들 (22) 썸네일형 리스트형 211109 전자레인지 없이 산다 나의 부엌엔 전자레인지가 없다. 전자레인지 없이 산지 올해로 4년째다. 기숙사와 쉐어하우스를 거쳐 완전한 1인 생활을 시작하면서 집에 이것저것 사들였지만, 전자레인지만은 예외였다. 전자레인지가 집에 있으면 편의점 음식만으로 매 끼니를 때울 것만 같았다. 즉석밥도 쉽게 돌릴 수 있고 식은 음식을 다시 간편하게 데울 수 있지만, 자극적인 간편식의 유혹을 이길 자신이 없어서 강수를 뒀다. 전자레인지만 없으면 냉동식품과 레토르트 식품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무언가를 만들어 먹으려면 화기를 이용해야 하고, 그러려면 냄비나 팬이 필요하고, 그러면 설거지가 생기고 (이쯤에서 떠오르는 생각, 아 귀찮고 귀찮다) 그래서 한동안 조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시리얼, 컵라면.. 211020 낯선 얼굴들 앞에서 연차 내고 세저리 다녀온 날. "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별 도움이 안 될 거 같아요." 일 대 다 커뮤니케이션에 유독 더 취약한 나는 사실 가는 날 새벽까지도 잠을 잘 못 잤다. 발표 준비를 다 못했기도 했지만 실수할까봐 무섭고 떨렸다. 네 명이서 나눠서 하는 이십분짜리 '경제사회토론' 발표도 버거워하며 떨던 사람이 두 시간(쉬는 시간 포함)동안 여러개의 눈을 마주하고 그 앞에서 혼자서 말을 한다고? '못한다고 할 걸. 대차게 거절할 걸.' 후회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하니까. 너무 노잼일까봐 중간에 잔잔한 웃음포인트도 넣어가며 스크립트를 짰다. (애드립이라는 것도 준비해야 하는 편ㅠ) 그리고 마음 먹었다. 무리해서 유쾌하게 하려 하지말고, 딱 아는 만큼만 내가 고민한 만큼만 말하.. 211027 "저기...혹시 그림 그려드려도 될까요?" 사이비 대처법 화이자 2차 접종을 하고 노곤했지만 할 일이 있어 업무를 마치고, 서점에 들렀다. 바닥에 앉아서 책을 한참 보고 있는데 미니 스케치북을 든 여자분이 말을 붙여왔다. "저기... 제가 과제로 인물스케치를 해야 하는데, 책 읽으시는 모습 그림 그려도 될까요?" "아, 예. 괜찮아요." '과제와 취재는 돕는 것이다' 신조에 따라 흔쾌히 허락했다. 누군가에게 말을 붙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 별생각 없이 책 보다가 슬슬 다리가 저려 일어나는데 맞은편에서 그림을 그리던 분이 "아, 이거 완성은 아직 아닌데, 사진 찍어가셔도 돼요!" 하며 보여주셨다. '신기한 경험이네' "감사합니다" 그림을 사진으로 찍고 떠나려는데 말이 이어졌다. "제품 디자인 관련해서 과제를 하려면 추후에 인터뷰도 필요한데요. 연락처를.. 210903 금요일 밤엔 칭따오 논알콜 맥주를 퇴근 후 홍제천을 뛰었다. 한 시간여 달리고 나니 맥주가 당겼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은데 술을 마시고 싶진 않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가 싶지만, 맥주를 마시고 싶지만 알코올은 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딱 맥주 마시는 기분만 내고 싶은데! 이럴 때 찾을 수 있는 건 논알콜 맥주다. 대학생 때 크리스마스 이브에 친구와 토익학원을 가면서 논알콜 맥주를 사 먹어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마신 논알콜 맥주는 정말 맛이 없었다. 맥주 맛을 흉내 낸 음료수 같은 느낌? 밍밍하고 이상했다. 앞으로는 차라리 그냥 맥주를 마시든, 아니면 아예 마시지 말자고 마음 먹었다. 그날 이후로 논알콜 맥주를 사 먹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맥주를 마시는 기분을 내고 싶은 날이었다. 힘껏 달리고 나서 시원하게 .. 210903 문디목딱? 에어프라이어에 고구마를 넣으면 (햇 밤고구마 먹는법) 트위터에서 인기를 끌었던 문디목딱나무 고구마 조리법으로 햇 밤고구마를 구웠다. 문디목딱이라는 이름이 왠지 사투리 같은데, 뜻을 유추하자면 못생긴 몽땅한 나무토막 정도 이지 않을까. 구워진 고구마가 정말 나무토막처럼 보이니 말이다. 레시피에 쓰여 있는 대로 잘 씻은 고구마를 잘라서 180도에서 20분 돌렸더니 완성됐다. 바싹 마른 겉모양새와 달리 속은 촉촉했다. 이렇게 쉽게 군고구마를 만들 수 있다니 에어프라이어 만세다 만세. 껍질도 미리 벗기면 더 나무토막 같아보였을테지만, 생고구마 껍질을 깎기가 귀찮아서 그냥 썰어 넣었는데 괜찮았다. 익어서 껍질을 벗겨내기 훨씬 수월했다. 껍질째로 먹어도 나쁘지 않다. 고구마를 좋아하는데, 이 방법으로 벌써 3-4개를 해치웠다. 고구마말랭이에서 느낄 수 있는 건조한 느.. 210901 제철과일을 챙겨먹자, 무화과 제철음식. 제철채소. 제철과일. 제철은 '알맞은 시절'이라는 뜻이다. 딱 알맞은 때. 알맞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다. '일정한 기준, 조건, 정도 따위에 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한 데가 있다.'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알맞기는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그래서인지 제철 뒤에 붙는 것들은 한정판처럼 귀하다. 놓치면 아쉽고 챙기면 뿌듯한 제철. 제철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말들. 제철음식. 제철 뒤엔 먹거리가 붙는 게 제격이다. 사실 제철 과일이든, 제철 채소든 챙겨 먹으려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달리기를 하면서 건강한 끼니에 관심이 생겼고, 잘 챙겨먹고 싶어졌다. 동네 마트에 새로 나온 채소, 과일에 관심을 한 번 더 주고 저걸 어떻게 먹어볼까 궁리하는 게 즐겁다. 스스로를 챙기는 기분이 든다. 대충 .. 210805 힘이 난다! 여름채소도시락(흩뿌림 초밥) "내일은 오늘보다 괜찮을까?" 옆자리 선배가 물었다. 어제는 "그래도 오늘보다는 낫지 않을까요?"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같은 질문에 "과연 그럴까요?"라고 대답했다. 대신에 오늘은 선배가 "그래도 내일은 괜찮을 거야."라고 말해줬다. 퇴근길에 조금은 힘이 났다. 그제도 버거웠지만 어제도 쉽지 않았고 오늘도 벅찼고 내일도 힘들 것을 예감하는 한 주다. 힘을 내려고 부엌에 섰다. 쉽고 빠르게, 이왕이면 설거지가 적게 나오는 밥을 내 손으로 지어 먹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엄청난 요리는 못하지만, 있는 재료로 적당히 맛있는 한끼는 만들 수 있으니까. 다정한 레시피북 에 나온 '여름채소 도시락(흩뿌림 초밥)' 만드는 법을 응용해서 저녁밥을 만들었다. 응용했다고 하기에는 두부소보로와 오이 빼고는 재료도 내멋.. 210619 망원한강공원 멀리서 친구가 비행기를 타고왔다. 그것도 오직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친구와 오랜만에 망원동을 걸었고 시장에 들러 수박주스를 입에 물고 구경을 하다 맛있어보이는 것들을 하나둘 모아 주렁주렁 매달고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친구가 배송시킨 전통주 지란지교는 이날의 또다른 주인공이었다. 이름값을 하더라. 식어서 얼음컵에 따라 마셨는데 맑고 경쾌한데 산뜻한 향도 있어서 여름날 낮술용으로 적합했다. 회를 한점 먹고 술을 한모금하니까 풍류를 즐기는 선비가 된 느낌도 나고 떡갈비와도 매우 잘 어울렸다. 대감댁 잔칫상을 받아 반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양반의 향기가 나는 술이었다. 얼음컵에 마시니 가벼운 와인을 마시는 것 같기도 하고. 더울 때 마셔도 부담 없는 맛이었다. 도수는 17도. 둘이 나눠마시니 ..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