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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7 잘하지 못하는 걸 계속하는 즐거움(수영일기1) 평영 자세를 배운지 한 달 반이 지났지만, 여전히 팔과 다리의 타이밍은 알듯 말듯 모르겠다. 상체 동작을 먼저 하고 몸 전체를 쭉 펴고 나서 다리를 촤 펼쳤다가 접는 건 알겠는데요. 이 묘한 엇박자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몸이 못 따라간다. 그래도 머리를 물속에 넣은 다음 발바닥으로 물을 밀고 다리를 모아 감으면서 몸을 앞으로 쭉 내어 본다. 전진하는 흐름을 느껴보려 애쓴다. 다시 ‘발-손’ 이렇게 배운 걸 생각하면서 또 해본다. 가다 서다 해도 괜찮다. 여긴 아직 제일 가장자리 초초보레인이니까. 나아지는 게 있나 싶은데 나도 모르게 변하고 있다. 시간과 반복의 힘을 체감하는 중이다. 처음 수영장에 들어선 3개월 전보다 1.8미터 수심을 덜 무서워하게 됐고, 이젠 자유형도 얼핏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게 ..
211109 전자레인지 없이 산다 나의 부엌엔 전자레인지가 없다. 전자레인지 없이 산지 올해로 4년째다. 기숙사와 쉐어하우스를 거쳐 완전한 1인 생활을 시작하면서 집에 이것저것 사들였지만, 전자레인지만은 예외였다. 전자레인지가 집에 있으면 편의점 음식만으로 매 끼니를 때울 것만 같았다. 즉석밥도 쉽게 돌릴 수 있고 식은 음식을 다시 간편하게 데울 수 있지만, 자극적인 간편식의 유혹을 이길 자신이 없어서 강수를 뒀다. 전자레인지만 없으면 냉동식품과 레토르트 식품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건강한 식생활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무언가를 만들어 먹으려면 화기를 이용해야 하고, 그러려면 냄비나 팬이 필요하고, 그러면 설거지가 생기고 (이쯤에서 떠오르는 생각, 아 귀찮고 귀찮다) 그래서 한동안 조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시리얼, 컵라면..
211020 낯선 얼굴들 앞에서 연차 내고 세저리 다녀온 날. "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별 도움이 안 될 거 같아요." 일 대 다 커뮤니케이션에 유독 더 취약한 나는 사실 가는 날 새벽까지도 잠을 잘 못 잤다. 발표 준비를 다 못했기도 했지만 실수할까봐 무섭고 떨렸다. 네 명이서 나눠서 하는 이십분짜리 '경제사회토론' 발표도 버거워하며 떨던 사람이 두 시간(쉬는 시간 포함)동안 여러개의 눈을 마주하고 그 앞에서 혼자서 말을 한다고? '못한다고 할 걸. 대차게 거절할 걸.' 후회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하니까. 너무 노잼일까봐 중간에 잔잔한 웃음포인트도 넣어가며 스크립트를 짰다. (애드립이라는 것도 준비해야 하는 편ㅠ) 그리고 마음 먹었다. 무리해서 유쾌하게 하려 하지말고, 딱 아는 만큼만 내가 고민한 만큼만 말하..
211027 "저기...혹시 그림 그려드려도 될까요?" 사이비 대처법 화이자 2차 접종을 하고 노곤했지만 할 일이 있어 업무를 마치고, 서점에 들렀다. 바닥에 앉아서 책을 한참 보고 있는데 미니 스케치북을 든 여자분이 말을 붙여왔다. "저기... 제가 과제로 인물스케치를 해야 하는데, 책 읽으시는 모습 그림 그려도 될까요?" "아, 예. 괜찮아요." '과제와 취재는 돕는 것이다' 신조에 따라 흔쾌히 허락했다. 누군가에게 말을 붙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 별생각 없이 책 보다가 슬슬 다리가 저려 일어나는데 맞은편에서 그림을 그리던 분이 "아, 이거 완성은 아직 아닌데, 사진 찍어가셔도 돼요!" 하며 보여주셨다. '신기한 경험이네' "감사합니다" 그림을 사진으로 찍고 떠나려는데 말이 이어졌다. "제품 디자인 관련해서 과제를 하려면 추후에 인터뷰도 필요한데요. 연락처를..
211028 '삶은 오렌지' <LIFE IS ORANGE> 2021 가을호 여느 택배 상자와는 다르게 정갈하게 각 잡힌 박스가 도착했다. 스티커를 떼고 박스를 열었더니 그 안에 맞춤하게 담긴 잡지가 보였다. 43호, 광고회사 이노션에서 계절마다 발간하는 잡지다. 어라운드 매거진의 이벤트를 통해 받아보게 됐다. 광고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지금 여기의 트렌드는 어떤 걸까 궁금했고, 낯선 분야의 생각들이 내게는 어떤 영감으로 다가올지 기대가 됐다. 표지의 달걀 껍데기 사진이 인상적이었는데, "삶은 뭘까요? 삶은...달걀?!"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삶은 달걀을 비틀어 삶은 오렌지라고 명명한 걸까 궁금해졌다. 단순하지만 위트 있는 표지였다. 잡지의 빛깔을 노란빛을 품은 오렌지빛으로 통일한 점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색도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빨강과 노랑 사이,..
210904 동네에 돈가스집이 생겼다(홍은동 냠냠돈까스) 동네에 돈가스 가게가 생겼다. 이름은 냠냠돈까스. 노란색 바탕 간판에 쓰인 가게 이름이 귀엽다. 인테리어는 특별한 것 없이 여느 분식점 같은 느낌이다. 가게에서 먹고 갈 수도, 포장해서 갈 수도 있는데 튀김과 소스를 따로 팔아서 반찬을 사듯 돈가스만 사 가기에도 좋다. 보통 돈가스를 시키면 정식으로 밥, 샐러드 등이 기본으로 나오지만, 굳이 세트를 안 시키고 먹고 싶은 것만 고를 수 있는 게 합리적인 것 같다. 소스도 취향껏 골라 마음대로 조합해 먹을 수 있다. 기본인 등심정식을 시킬까 치즈롤정식을 시킬까 고민하다 치즈롤정식을 시켰다. 치즈롤가스 한 줄과 밥 샐러드, 장국, 깍두기와 단무지가 나왔다. 브라운소스가 올려나온 치즈롤가스는 깨끗한 기름에 튀겼는지 고소한 맛이 올라왔다. 고기는 한돈을 쓴다고 했..
210906 맛집의 옆집 (홍제역 압구정떡볶이) 홍제역 3번출구 근처에는 떡볶이집이 두 곳있다. 하나는 홍제역 떡볶이 노포 '불란집'이고 그 옆집의 옆집은 '압구정떡볶이'다. 이사를 하고 동네 떡볶이 맛집을 검색하다 유명한 불란집 떡볶이를 먼저 맛봤다. 달고 꾸덕한 부산스타일의 빨간맛이었다. 떡은 검지손가락 굵기의 밀떡이었는데 진한 빨간색에 점도가 있는 양념이 폭 배여서 자꾸 먹게되는 맛이었다. 퇴근길에 비가 와서 저녁으로 뭘 먹을까하다 이번엔 아직 맛을 못 본 압구정떡볶이를 포장해왔다. 떡이 짧고 통통한 편인데 안에 구멍이 있어서 양념이 쏙 들어가 있다. 떡은 푹 퍼진 편이었고 어묵은 들어가지 않았다. 떡볶이 양념을 빨아들여 통통하게 불은 어묵을 좋아하는 편이라 좀 아쉬웠다. 양념은 다시다맛이 많이 나는 고춧가루 국물맛이었다. 찌개국물 같은 느낌이라..
210904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초입 안산 자락길을 걷다 안산 자락길을 찾은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첫번째로 걸었던 건 일년 전 이맘 때였다. 첫 등산화를 사고, 큰 산에 가기 전 등산화를 내 발에 맞게 길들이려 안산 자락길을 걸었다. 독립문에서부터 조금 걸었을 뿐인데, 다양한 수종이 자라는 숲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메타세콰이어길이 특히 좋았다. 길게 뻗은 나무 위 초록 그늘이 기억에 남는다. 그땐 버스를 타고 독립문역까지 와서 걷기 시작했지만, 일년이 지난 지금은 안산이 집에서도 쉽게 걸어갈 수 있는 동네 산이 됐다. 서대문구 주민이 되고 나서 찾은 안산 자락길 트래킹은 서대문구청에서 시작했다. 연북중학교와 서대문구의회 사이 오르막길을 오르면 자락길 초입이 나온다. 나무데크로 잘 정돈된 길을 걷는데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났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