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택배 상자와는 다르게 정갈하게 각 잡힌 박스가 도착했다. 스티커를 떼고 박스를 열었더니 그 안에 맞춤하게 담긴 잡지가 보였다. <LIFE IS ORANGE> 43호, 광고회사 이노션에서 계절마다 발간하는 잡지다. 어라운드 매거진의 이벤트를 통해 받아보게 됐다. 광고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지금 여기의 트렌드는 어떤 걸까 궁금했고, 낯선 분야의 생각들이 내게는 어떤 영감으로 다가올지 기대가 됐다.
표지의 달걀 껍데기 사진이 인상적이었는데, "삶은 뭘까요? 삶은...달걀?!"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삶은 달걀을 비틀어 삶은 오렌지라고 명명한 걸까 궁금해졌다. 단순하지만 위트 있는 표지였다. 잡지의 빛깔을 노란빛을 품은 오렌지빛으로 통일한 점이 우선 눈에 들어왔다. 색도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빨강과 노랑 사이, 주황을 통해 펼쳐낸 메타버스나 세계관 등의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출, 퇴근길 스테들러 사의 노란 연필을 꺼내 들고 버스 안에서 즐겁게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잘 완성된 콘텐츠'의 시작점을 엿볼 수 있는 점들이 좋았다. 특히 여기 어때 도망가자 캠페인을 진행한 과정을 기록한 글이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 갈 수 없는 사람들, 일상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이 광고가 되기까지 콘텐츠를 기획한 사람이 지금 여기를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느껴졌다.
'도망'이라는 단어를 메인 키워드로 썼는데, 도망이 따뜻한 위로로 다가올 수 있게 전환한 시도가 인상적이었다. 너무 당연하지만 결국 일상과 연결된 콘텐츠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뇌리에 남는 특별한 제목을 짓고 싶어서, 인상적인 레이아웃을 뽑고 싶어서 무리할 때가 많은 내게 일상을 좀 더 섬세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그 안에 많은 답이 숨어있을 수 있다고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한 광고사의 사보를 읽으면서 '광고는 단순히 감각적인 게 아니다. 문제 인식 후 해결하는 과정의 결과물이고, 그 안에서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콘텐츠'라는 생각을 품게 됐다. 앞으로는 광고를 더 유심히, 섬세하게 읽어봐야겠다. 광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의 논리 과정을 살펴가는 새로운 재미를 하나 더 얻었다. 잡지라는 창을 통해 다른 세계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다만 아쉬웠던 건 볼륨 있는 챕터에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30-50대 남성에 편중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 호에서만 유독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다양성을 추구했다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남성이라고 모두 같은 목소리인 것도 아니지만, 다채로운 목소리를 읽고 싶어 펼치는 잡지의 재미와 의미를 더 추구하려면 여성의 목소리도, 더 젊고 더 나이 든 사람들의 목소리도 담는 시도가 필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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