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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7 [전시/사진] 어쩌면 우리는 모두 광장의 주인공 wooksworks 사진전 <무명의 주역들> 연휴 전날, 야근 출근 전 시간을 쪼개 사진전을 보러갔다. 연이은 야근에 몸은 좀 피곤했지만 가길 잘했다. 평일 낮 시간이라 그런지 전시장에 관람객이 나 혼자였다. 덕분에 운 좋게도 작가님의 일 대 일 도슨트와 함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럭키! 우선 전시가 열리는 공간부터가 인상적이었다. 파사드서호. 열린 철제 대문을 따라 들어가면 무심하게 정돈한 마당이 보인다. 맷돌 모양 징검다리를 밟으며 안으로 향하는데 너무 조용해서 들어가도 되나 잠깐 고민했다. 다락방을 품은 1970년대 스타일 이층 양옥. 뼈대는 그대로 두고 빈티지하게 꾸몄다. 배치된 가구와 소품들의 톤이나 디테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전반적으로 나무톤이지만, 방마다 콘크리트, 벽돌, 시멘트, 유리, 우레탄폼 같은 소재를 살려 각각 다른 분..
230831 창작의 세계에 입문하는 이에게 <미지를 위한 루바토> 김선오 시인의 산문집 , 아침달, 2022 대학교를 졸업하고 드라마를 기획, 제작하는 일을 시작한 친구에게 선물했다. 개인적으로 시인이나 소설가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의 장르 바깥에서 조금은 느슨하고 솔직하게 자기를 보여주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완독한 건 아니지만 창작에 대한 글귀가 인상적이라서, 또 짧은 글들의 모음이라 생각이 막힐 때나 출퇴근길에 읽기에 맞춤할 것 같다는 이유로 골랐다. 특히 제목이기도 한 '미지를 위한 루바토'에 관한 글이 기억에 남는다. 루바토는 이탈리아어로 '시간을 훔치다'라는 뜻인데 루바토가 악보에 적혀있으면, 연주자는 기존 템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템포를 조절할 수 있다. 따라서 똑같은 루바토는 두 번 연주될 수 없다. 창작의 ..
230925 [요리/브리치즈파스타] 브리치즈파스타 오답노트 (중요한 건 마늘!) 간단한 재료로 쉽게 만들 수 있는 걸로 유명한 브리치즈파스타. 토마토, 바질, 치즈를 주재료로 산뜻하고 신선한 맛을 기대했는데..! 지난번에 만든 것보다 맛이 없었다. 아주 맛이 없었던 건 아닌데, 맛에 빈틈이 느껴졌다. 왜지? 왜일까? 신선한 재료를 손질하다 보면 싱싱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꽤 그럴싸해 보이는 비주얼에 비해 맛이 아쉬웠는데 패인을 분석해 보자면, 1. 생마늘을 다져 넣지 않았다. 많은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 만큼 신선한 재료의 고유한 맛이 포인트인 것 같다. 얼린 간 마늘을 써서 그런지 마늘향이 부족했다. 그래서 맛이 빈 것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2. 방울토마토 복불복에 실패했는지도? 방울토마토도 단맛, 신맛이 풍부하게 있는 대추방울토마토로 하면 더 맛있었을 것 같다. 단단하고 통통..
230916 [연극/두산아트센터] 식물도 인간도 '잘못된' 성장은 없다 <잘못된 성장의 사례> 올해 발견한 장소 중 하나는 두산아트센터다. 이곳에서 두산인문극장 2023 강연(노년내과 의사 정희원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잘 늙는 법에 대해 배웠다)을 들었고, 연강홀에선 뮤지컬 도 봤다.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가 평소 취향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분이 이 연극을 자신의 '올해 최고 연극'이라고 칭찬한 스토리를 보고 냅다 예매했다. 무대의 측면을 관객에게 열어둔 연극은 처음이라서 무대 구성부터 신기했다. 식물분자생물학 연구실을 고스란히 옮긴듯한 디테일들에 극이 시작하기 전부터 기대가 커졌다. 좌석은 비지정석이라 측면에 앉을까 정면에 앉을까 고민하다가 익숙한 정면 가운데 자리에 앉았는데, 측면에 앉았다면 몇몇 장면에서 은주의 폭발하는 감정 등을 더 잘 볼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결국 어떤 자리가 ..
[문구/펜] 얇은 젤펜을 좋아한다면, 파이롯트 쥬스업 0.3mm 오랜만에 친구와 교보문고 핫트랙스를 구경했다. 광화문 교보는 우리의 방앗간 같은 곳이다. 얇은 펜을 좋아하는 우리는 고등학생 때 하이테크를 좋아한 이력이 있는데, 친구는 이제 젤잉크의 세계에서 볼(펜)의 세계로 갔고 나는 여전히 젤잉크펜을 선호한다. 하이테크에서 시그노, 쥬스업으로 넘어왔을 뿐 여전히 사각사각 종이를 가르는 얇은 젤펜 러버다. 쥬스업(Juice up)은 하이테크보다 무게중심이 아래로 쏠려있어 필기감이 안정적이다. 노크식인 것도 뚜껑을 챙길 필요가 없어 좋다. 게다가 고무그립이 있어 오래 써도 상대적으로 손가락이 더 편하다. 처음 나왔을 때 네이비(블루블랙) 색을 좋아하면서 쓰다가 잉크를 다 비우고, 리필을 못 구해서 펜꽂이에 껍데기만 덩그러니 놓여있던 게 한 일 년 됐나. 인터넷에서 리필..
230920 [예술의전당/티켓팅] 임윤찬을 놓치고, 양인모를 얻었다 <양인모&홍콩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오늘은 티켓팅 날. 예술의전당 유료회원이 아닌 나는 오후 2시에 티켓팅에 참전할 수 있었다. 예매 시간에 닥쳐서는 로그인도 쉽지 않다고 들어서 30분 전에 로그인을 하고서 기다렸다. 결전의 2시. 미리 로그인을 해두지 않은 준영인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내왔다. '난 글렀어...' 그와 달리 내 컴퓨터는 스무스하게 예매창으로 넘어가길래 '오? 되려나?' 했는데, 역시나 안 됐다. 잔여석이 여러개 있다고 나오는데 색칠된 포도알은 딱 하나. '아, 그때 그 주황색을 눌렀어야 했는데...' 혹시 다른 자리가 있나 하고 보는 사이에 그 하나마저 사라졌다. 역시 임윤찬이구나. 피아노 레슨을 받으면서 연습할 정도로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지인은 조성진이나 임윤찬 티켓팅은 너무 어려워서 차라리 외국 공연 티켓을 사서 간..
4 돌올하다 돌올하다(突兀하다) (형용사) 1. 높이 솟아 우뚝하다. 2. 두드러지게 뛰어나다. 이 세상의 어떤 꽃보다도 선명하고, 강렬하고, 그래서 그 색깔만이 돌올하게 떠오르는 빛이었다. 출처 돌올하다는 표현을 처음 봤다. 글자 모양을 보고 뭔가 쑥 튀어나온 이미지가 생각났다. 낭중지추 같이 비슷한 것들 중에 쑥 하고 올라온 느낌. 사전을 찾아보니 정말 그런 느낌의 단어여서 신기했다. 어간의 글자 순서를 바꾸어 '올돌하다'라고 써도 된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우뚝하다, 탁월하다가 있다. [도롤하다] 발음이 도로로 구르는 느낌이 난다.
230815 혹시 책 선물 좋아하세요? (츤도쿠의 책 나눔 시작) 책 사는 걸 좋아한다. 책을 사는 건 다른 구매 행위보다 죄책감이 덜 들고, 꽤 뿌듯하다. 소비 자체가 주는 즐거움에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지적 허영도 채워준다. 그런데 이게 너무 사다 보니까,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걸 넘어 책들이 조금 버겁게 느껴졌다. 특히나 전셋집을 전전하는 내게 공간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책은 때때로 짐과 동의어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다가올 이사를 앞두고 츤도쿠의 책 나눔을 시작했다. 낯선대학 뉴스레터에 이런 편지를 실으면서. 저는 츤도쿠입니다. 츤도쿠(積ん読)는 ‘책을 사는 것은 좋아하지만 쌓아 두고 결코 읽지는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일본어인데요. ‘읽다’라는 뜻의 일본어 ‘도쿠(読)’와 ‘쌓다’란 의미의 ‘츠무(積む)’에서 파생된 ‘츤(積)’이 합쳐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