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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본 것들

240119 [망원/카페] 어떤 에그타르트 굽는 집의 마지막날 <피카브로드>

지난 주말에 혜미와 망원동에 가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망원동에 갔다고 해도 혜미가 앉은자리에서 건너편 카페를 보지 못했다면, 내가 지도앱에서 검색한 그곳의 블로그 리뷰를 읽지 않았다면 결국 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눈 밝은 혜미가 발견했고, 평소 별점과 간단평만 읽는 내가 그날따라 굳이 블로그 리뷰를 눌렀고, 마침 그게 순도 높은 진심으로 눌러쓴 리뷰(이 집 에그타르트 안 먹으면 바보 뚱땡이!라는 표현을 보고 안 갈 도리가 없었다!)였어서 방문했다. 그리고 알게된 사실. 이곳은 영업일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는 것. 
 

오늘은 마들렌을 선물로 주셨다.

 

이건 오늘 마지막 영업을 마친 망원동의 카페 '피카브로드' 이야기다.
 
피카브로드는 크지 않은 카페다. 창문 밖을 마주하고 앉을 수 있는 바 테이블이 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두 자리씩 있다. 카운터를 마주하고는 두 팀 정도가 앉을 수 있을 자리가 마련돼 있다. 외벽에 붙은 먹음직스럽게 찍힌 에그타르트 사진에 이끌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은근한 온기가 맞아준다. 고소한 버터 밀가루 냄새도 난다. 처음 이곳에 들른 날 우리는 내향형의 사람들임에도 사장님께 어떤 블로그를 보고 왔는데, 진짜 찐 팬이 쓴 후기여서 안 올 수가 없었다고, 또 결혼을 축하드린다고 주절주절 주접을 떨었다. 사장님은 환하게 웃으면서 그 블로그 어떤 분인지 알 것 같다고, 정말 그분은 매일 출석하고 있다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는 혜리를 위해 포장한 타르트에다 휘낭시에를 서비스로 챙겨주었다.
 

넘치는 시나몬파우더인심!

너무 과분하다는 우리의 손사래에도 어차피 재료도 써야 하고, 와서 굳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축하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따뜻했다. 처음 간 손님에게도 이렇게 다정하다고?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라는 후기가 이해됐다. 동네 길을 걸으며 에그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겉의 타르트지는 바짝하고 필링은 보드랍고 풍부해서 정말 맛있었다. 크기가 작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오물오물 먹으면서 걷는 길이 즐거웠다. 마지막 영업 전에 꼭 다시 한번 들러야지 생각했는데, 결국 오늘 들렀다. 에그타르트 맛에 엄격한 준영과 준영의 동료에게 선물하는 김에 이번엔 라떼와 함께 앉아서 한 번 더 먹어봐야지 하고 말이다.
 

평소라면 ~ 뒤에 아무 것도 없었을 텐데. 다른 볼펜으로 쓰인 마지막 날짜가 뭔가 아쉬웠다.
그래서 나도 썻다. 방명록!

 

앞으로 한 동안 쉽게 만날 수 없는 에그타르트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 듯했다. 사장님은 에그타르트를 포장하고, 계속 굽고 있었다. 처음에 쇼케이스에 타르트가 없어서 혹시 다 나갔나 걱정한 게 무색했다. 다행이었다. 오늘은 자리에 앉아 아이스라떼와 함께 에그타르트를 먹었다. 그러다 방명록을 봤다. 카페의 방명록이라니. 표지에 마지막 날이 쓰여 있는 게 약간 서글픈 김에 나도 글을 남기기로 했다. 두 번째 방문이지만 그래도 일주일 새 두 번이나 왔으니까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나몬파우더를 듬뿍 뿌린 에그타르트를 먹는데 오늘 날씨도 유난히 봄 같아서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이런 공간을 이제야 알게 되어서 아쉽지만, 사라지기 전에 두 번이나 와 볼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
@fikabrod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