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출근하면 회사가 유독 조용하다. 편집국에는 채워진 자리보다 비워진 자리가 훨씬 많다. 출근한 사람이 적어 난방이 원활하지 않기도 하지만 빨간날 사무실은 유난히 휑하고 썰렁하다. 드문드문 꽤 하는 휴일 출근은 칠 년째 여도 익숙하지 않다. 남들 놀 때 같이 쉬고 싶은 마음은 연차가 쌓여도 가라앉지 않는다. 일요일 출근을 할 땐 전주 금요일에 미리 당겨 쉬지만 그래도 출근을 하면 괜히 억울하다. 물론 남들 일할 때 노는 금요일은 억울한 일요일만큼이나 짜릿하다.
오전 평근 업무를 하고 동료들과 근처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짜장면을 든든히 먹었다. 편집국이 춥다며 따뜻한 라떼 한잔도 사들고 올라왔다. 슬슬 새로 전송된 기사를 보면서 어떤 기사를 포털에 올릴까 고르던 찰나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내려와봐요 쿄쿄] 후다닥 내려갔다. 어느새 아까보다 더 따끈해진 볕이 눈부셨다. 정동길 쪽에서 달려오는 친구가 보였다. 반가웠다. 친구가 분주하게 백팩을 열고 무언가를 꺼냈다. 일회용 젓가락과 함께 비닐봉지에 담긴 네모난 밀폐용기.
설마 이건 도시락?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와서 봉지를 열어보았다. 오전에 친구가 만든 유부초밥이 맛있어보인다고 했는데, 이렇게 예쁘게 담아다 주다니. 귀엽게 담긴 유부초밥을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새어 나왔다. 다정한 마음이 일요일 출근맨을 달래줬다. 누군가가 챙겨준 도시락은 메뉴나 맛이랑 상관없이 애정을 느끼게 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단양여행 때 나도 소박한 도시락을 쌌다.
어릴 적 기차에서 컵생수(도시락을 사면 가끔 함께 받는, 기내식에서 나오는 그 한 컵 용량의 물이다. 이걸 구하고 싶어서 한컵물, 도시락물 등 여러 검색어를 넣어보면서 '컵생수'라는 명칭을 알게 됐다.) 마시는 걸 좋아했다는 친구의 말에 에키벤을 떠올렸다. 결국 컵생수는 구하지 못하고 투박한 모양의 스팸무스비와 삶은 달걀만 싸왔는데 친구가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때는 못생긴 무스비 모양이 신경 쓰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맛, 모양보다도 먹을 사람을 생각하며 만들고 챙긴 마음 만으로도 도시락은 완성인 것 같다.
소소한 도시락을 자주 싸서 챙기고 나눠 먹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도시락을 싸는 마음은 상대에게 애정을 전하는 방법 중에 하나니까. 마음은 표현할 수록 커진다는 걸 더 실감하는 요즘이다. 여전히 춥지만 봄다운 순간이 잦아지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안그래도 짧은 봄을 놓치지 않고, 이 봄에 도시락을 또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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