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맛본 것들

210516 비 오는 날엔 찐한 아이스호지차라떼를

여름 장마 같은 비가 주말 내내 내렸다. 비 오는 날엔 실내에서 내리는 비를 구경하는 게 제일이지만, 야외에서 걷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대신 준비할 것이 있는데, 큰 우산(투명우산이면 더 좋다)과 이왕이면 무릎 위로 올라오는 바지, 젖어도 축축해지지 않는 샌들이 필요하다.

투명우산은 빗방울과 주변 풍경을 함께 볼 수 있게 해준다. 짧은 바지와 샌들은 바지밑단, 양말과 운동화가 젖었을 때 느껴지는 불쾌감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그 전에 축축해지느니 아예 빗 속에 두 발을 적시겠다 마음을 먹어야한다.

지루하게 계속되던 비 속에서 걷다 '연희대공원'에 들렀다. 우연히 방문이었지만 비 오는 날에 가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분명 흔한 동네 골목길이었는데 문 안에 들어서자 마자 풀 냄새가 났다. 담벼락 안의 마당이 나무들로 꾸며져있었다. 녹음 해둔 듯한 새 소리도 들렸다. 이층 양옥을 개조한 내부엔 차를 마시는 공간(티 하우스 eert)와 식물을 판매하는 편집샵(플랜트 라이브러리 GARDEN EARTH)으로 구성돼있었다.

eert 아이스 호지차라떼. 진하고 고소하다. 강추.

가오픈 기간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eert의 대서, 상강, 하지, 곡우 등 절기 이름으로 구성해둔 차 메뉴가 인상적이었다. 각 절기에 마시기 좋은 차로 블렌딩해둔 걸 처음 봤는데 재밌었다. 디저트로는 'sweets'로 표시된 메뉴가 있는데 화과자세트라고 보면될 것 같다. 스위츠를 시켰더니 크림치즈와 팥을 버무린 떡 같은 특별한 다과류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라벤더였나 허브향 터치가 들어간 떡에 시트러스향이 깃든 과자도 한 번도 못 먹어 본 맛이었어서 기억에 남는다. 차와도 딱 어울릴 정도의 단맛이어서 다음에 가도 또 시켜 먹을 용의가 있다.

칠천원이 아깝지 않은 맛. 꼭 드세요. 강추.

아래에서부터 차례대로 먹는 게 좋은 것 같다. 단 정도와 향, 맛이 점점 강하게 느껴진다. 떡과 앙금이 들어간 경단, 파운드케이크 류를 한 접시에서 다 즐길 수 있다. 종이로 만들어진듯한 접시와 나무젓가락도 다과랑 너무 잘 어울려서 좋았다. 세번째로 먹은 케이크?는 코팅된 캬라멜초코?부분이 좀 느끼했지만 여기서도 꽃향 터치가 조화로웠다. 첫번째로 먹은 이끼 낀 돌모양의 떡은 단 정도가 깔끔했고 팥 씹히는 질감에 크림치즈맛이 어우러지는 게 재밌었다. 두번째 화과자는 정말 향긋! 입에 꽃밭을 담는 기분이었다.


친구가 시킨 차는 히비스커스가 들어간 차였는데 색만큼 맛도 좋았다. 다기도 감각적이라서 차를 제대로 즐기는 기분이 든다.

공간엔 좌석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물론 그만큼 자리를 두고 눈치게임은 치열하겠지만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아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점이 정말 좋았다. 이층 베란다에 꾸며진 나무벤치와 티테이블도 제주도가 생각나는 돌들과 어우러져서 멋있었다.

베란다 공간을 이용한 외부 테라스.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비와서 진해진 색감이 더 멋있었다.
옛날 부잣집이 생각나는 이층 통로. 진한 색의 나무와 초록식물을 잘 배치해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