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영 자세를 배운지 한 달 반이 지났지만, 여전히 팔과 다리의 타이밍은 알듯 말듯 모르겠다. 상체 동작을 먼저 하고 몸 전체를 쭉 펴고 나서 다리를 촤 펼쳤다가 접는 건 알겠는데요. 이 묘한 엇박자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몸이 못 따라간다. 그래도 머리를 물속에 넣은 다음 발바닥으로 물을 밀고 다리를 모아 감으면서 몸을 앞으로 쭉 내어 본다. 전진하는 흐름을 느껴보려 애쓴다. 다시 ‘발-손’ 이렇게 배운 걸 생각하면서 또 해본다. 가다 서다 해도 괜찮다. 여긴 아직 제일 가장자리 초초보레인이니까.
나아지는 게 있나 싶은데 나도 모르게 변하고 있다. 시간과 반복의 힘을 체감하는 중이다. 처음 수영장에 들어선 3개월 전보다 1.8미터 수심을 덜 무서워하게 됐고, 이젠 자유형도 얼핏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게 됐다. 왠지 느낌이 괜찮을 땐 25미터도 중간에 멈추지 않고 갈 수 있다. 그것도 숨을 꾹 참고 억지로 나가는 게 아니라 호흡이라는 걸 어느 정도는 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물이 무서워서 무작정 끝을 향해 내달리는 조급함을 덜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천천히 가도 가라앉지 않고 가려면 힘을 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힘 빼기를 잘하고 싶은데 힘 빼기를 잘하는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다.
오늘은 배영 할 때 선생님 말대로 두 팔을 구부리지 않고 쫙 펴는 데 집중했다. 호흡 타이밍이 잘 맞은 덕에 물보라 속에서도 물을 거의 안 먹고 슥슥 몸을 전진시켰다. 비록 방향은 살짝 삐끗했지만 물속에서 잠시 평화로웠다. 물 안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되다니. 내게 물은 두려움이었는데 (사실 여전히 무섭기도 하지만 또 이 잔잔한 공포는 계속 품고 갈 테지만) 수영장이라는 공간이 익숙해지자 물도 덜 두려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물을 가르는 기분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매끄럽고 부드럽다.
수업 막바지에 선생님과 평영 동작 타이밍 연습을 했는데, 선생님에게 팔을 맡긴 참에 상체 동작이 끝나고 하체 동작을 한다만 생각하면서 다리를 움직였다. “소오온 발, 소오온발.” 선생님과 손을 잡고 나아가는데 왈츠를 추는 것 같았다. ‘앗, 뭔가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느낌이 들었을 때 선생님이 말했다. “이거예요. 이 리듬.” 어깨보다 조금 넓게 벌린 팔로 물을 누르고 두 손을 기도하듯 모아 가슴 가까이에 끌어올릴 때 숨을 하 마시고 바로 길게 내뻗으면서 물에 들어가서 (숨을 좀 참고) 몸을 쭉 늘리기. 여기까지가 상체. 이때 서두르지 않고(중요! 여기서 자꾸 가라앉을까 무서워서 몸이 빨라져서 리듬이 어그러진다.) 발목을 접은 채로 무릎까지 당겼다가 대각선 방향(너무 넓지 않은 각도로)으로 쭉 펼쳤다가 두 다리를 모아 붙인다. 이때 느리지만 확실하게 슈웅 나아가는 느낌이 좋다. 게다가 난 아직 배우고 연습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 느낌이 들면 뿌듯함도 추가다.
오늘 수업이 끝날 때 나보다 몇 달 뒤에 오신 할머니가 친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여기(초초급 레인)서만 일 년 할 거 생각해. 천천히 하면 되지.” 맞지, 그렇지. 조급할 필요도 서두를 필요도 없다. 수영 선배 윤지가 말해준 팁이 생각났다. ‘수영은 취미, 나는 공주’의 자세로 수영하기. 잘하지 못하면 어때, 제자리만 맴도는 것 같아도 조금씩 새로운 감각이 깨어나고 제자리걸음도 꽤 재밌는걸.
나는 여전히 수영을 잘하지 못하지만 한동안은 물에 계속 가볼 것이다. 뭐든 잘하는 걸 해서 인정받으면서 하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지만, 그건 일에 관해서인 거고. 취미는 취미니까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잘하지 못해도 꾸준히 하는 그 자체가 재밌으니까 계속해볼 것이다. 잘하지 못해도 즐거울 수 있다는 건 신기하고 다행인 일이다. 나는 평영을 여전히 잘하지 못하지만 계속해볼 것이다. 즐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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