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가기를 꺼리는 부서에서 일 년간 일해보겠다고 한 건 불편한 마음 때문이었다. 다들 나는 이래서 그 부서에 갈 수 없다고 말하는 와중에, 나도 가지 않을 이유를 대며 끝까지 버티기 싫었던 건 피곤해서였다. 사람 좋아 보이던 동료들이 단호히 제 입장만 말하는 게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도 했다. 타협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상황,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나는 그냥 뱉어버렸다. "제가 갈게요." 러시안룰렛 같은 상황에서 불안하느니 그냥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는 이왕 가는 거, 가게 '되는' 게 아니라 내가 가기로 '선택'한 거라고 되뇌며 스스로를 달랬다.
안 그래도 입사 이후로 늘 같은 일을 하면서 조금은 권태로웠다고, 새로운 걸 해보는 것도 좋겠다며 웃어 보였지만 나도 모르는 새 마음은 멍들었나 보다. 새 부서 새 자리에 앉았던 그때 나도 모르게 이유 없이 눈물이 고였다. 지금은 그때로부터 십일 개월이 흘렀고, 괜한 억울한 마음도 가라앉아 상처에 딱지가 앉은 것 같다.
어차피 한 번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좋아하는 선배들이 있는 동안 가서 함께 일을 해야지. 당시 낯선 부서에 가는 것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았던 건 먼저 가 있던 선배 둘 덕분이다. 두 사람은 내가 인간적으로 업무적으로도 닮고 싶은 어른이다. 축축하지 않게 상대를 위로하고, 곁에 있으면 즐거워지는 산뜻한 분들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이 두 선배는 우연히 함께한 점심 자리에서 내게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말을 해준 사람들이기도 하다. "회사에 있는 동안 재밌어야지." 20년 이상 이 일을 해온 선배들이 일을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내게, 우선 네가 즐거워야 한다고 말해준 게 마음 깊이 남았다. 그리고 나는 마음먹었다. 직업인으로서 즐겁게 지내겠다고. 일을 하는 동안 재미를 놓치지 않겠다고.
이 부서에서 있었던 껄끄러운 상황에서도 S선배의 위트는 빛이 났는데, 그 위트에 대해 Y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딱 그 마음을 읽고 적정한 선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공감 능력 덕분이 아닐까." 다정한 마음에서 누군가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산뜻한 위로도 나오는 거구나.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게을리 말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져본다.
위트와 유머. 내가 가지고 싶은 능력이자 내가 생각하는 멋진 어른의 자질이다. 삶은 늘 평탄하지 않다. 위기는 늘 닥칠 것이다. 삶의 고비마다 힘 빡 주고 바로 해결을 모색하는데 돌진하는 대신 실없는 농담도 툭 던지고 한숨 돌릴 줄 아는 어른이고 싶다. 그런 여유를 품은 사람도, 그의 곁도 더 편안하고 행복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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