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7 [전시/사진] 어쩌면 우리는 모두 광장의 주인공 wooksworks 사진전 <무명의 주역들>
연휴 전날, 야근 출근 전 시간을 쪼개 사진전을 보러갔다. 연이은 야근에 몸은 좀 피곤했지만 가길 잘했다. 평일 낮 시간이라 그런지 전시장에 관람객이 나 혼자였다. 덕분에 운 좋게도 작가님의 일 대 일 도슨트와 함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럭키!
우선 전시가 열리는 공간부터가 인상적이었다. 파사드서호. 열린 철제 대문을 따라 들어가면 무심하게 정돈한 마당이 보인다. 맷돌 모양 징검다리를 밟으며 안으로 향하는데 너무 조용해서 들어가도 되나 잠깐 고민했다. 다락방을 품은 1970년대 스타일 이층 양옥. 뼈대는 그대로 두고 빈티지하게 꾸몄다. 배치된 가구와 소품들의 톤이나 디테일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전반적으로 나무톤이지만, 방마다 콘크리트, 벽돌, 시멘트, 유리, 우레탄폼 같은 소재를 살려 각각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가 내리고나서 차분히 가라앉은 공기, 공간을 잔잔하게 채운 음악도 좋아서 전시를 보기 전에 이미 ‘공간’에 반했다. 공간의 개성이 강해서 여기서 다양한 전시를 소화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 여쭤봤더니, 역시나 전시를 하긴 하지만 전시 공간으로 주로 쓰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보통 촬영 스튜디오로 쓰인다고.
처음 설명 들었던 작품.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연사로 찍은 수백 장을 골라 레이어를 하나하나 배치했다고 한다. 작업 방식에 대해 설명을 듣기 전엔 그림자의 각도도 비슷해서 인물들이 적정거리를 지키며 걸어가는 ‘결정적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혹시 작업을 하면서 기준이 되었던 프레임(인물)이 있냐고 질문했더니 특별히 주인공은 없었다고 모두가 조화롭게 보이도록 작업한 것이라고 했다. 보기에 거슬리지 않고 불편하지 않았던 데는 다 작가의 의도가 녹아있었던 거다.
공간에 녹아있는 사진 배치의 의도를 유추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었다. 흰 벽 위에 눈 내린 풍경 사진을 올린 것도, 차경을 이용해 그 위에 해변 사진을 올린 것도 공간의 맥락 속에서 의미가 더 풍부하게 느껴졌다.
이건 너무 좋았던 배치인데, 시멘트 벽 패턴 위에 패턴으로 인식되는 거리의 풍경이라니. 패턴 위에 패턴. 내 맘대로 패턴의 방이라고 이름 붙였다. 액자 프레임 높이도 하나로 다 맞추지 않아서 보기에 편안했다. 반복되는 패턴 속 숨구멍을 하나 뚫어놓는 이런 센스 너무 좋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보는 작품이 상승 이미지인것도, 세로 패턴 위에 이 사진을 올려 생동감을 더한 것도 너무 재밌었다. 이렇게 평면의 이미지에 맥락을 더해주는 것도 전시의 묘미지. 너무 좋았던 부분.
눈 내린 거리 위를 바라본 사진은 사울 레이터가 생각나기도 했다.
거리의 풍경 위에 사람이 얹혀져서 만들어낸 회화적 순간. 귀엽다.
이렇게 다양한 소재가 한데 있는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재밌다. 빈티지 가구 보는 재미는 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건축을 전공한 작가의 시선 속 사람들은 건축다이어그램 속 인물들을 닮았다. 공간의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익명의 누군가들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또 복사붙여넣기의 개체들은 아니다. 비슷한듯 다른 사람들. 풍경 속 작은 모습이지만 각기 다르게 보이는 게 삶의 단면 같았다.
wooksworks의 초기 시선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꽤 먼 거리를 두고 대상을 향한다. 최근작은 거리의 풍경을 나란히 마주보기도 한다. 그만큼 광장과 그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렇게 그의 시점은 변화하고, 작품의 배경인 광장도 변화한다. 그에 따라 캔버스의 크기도 변화한다. 한 작가의 성장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방명록에도 남겼지만, 거주가 불안하지 않은 나의 공간이 생기면 작품을 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wooksworks의 <Nameless Protagonists 무명의 주역들> 파사드서호에서 10월 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