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7 결핍과 극복, 그리고 엇박(Off-beat)
원래도 학교를 좋아했는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더 학교에 가고 싶다. 학생일 때도 학생인 게 좋았는데, 직업이 학생이 아닌 상태가 되니까 더 학생이 되고 싶다. 배우고 공부하는 기분이 좋다. 회사에서도 배우고 공부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좀 다르다. 나의 성장보다도 일 자체에 무게가 좀 더 실리고, 돈을 받고 하는 일인 만큼 기준을 나 자신에게 둔다기보다 결과물로 타인(회사)의 인정을 받는데 신경쓰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뿌듯할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나의 성장과 스스로의 인정이 일순위가 아닌 데서 오는 아쉬움이 있다.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만큼 내 몫을 해내야지 생각하고 있고.)

학교라는 공간이 그립던 찰나, 좋은 구실을 만났다. 토요일 대휴로 목요일에 쉬게 됐는데, 마침 그날 대학교에서 낯대 할아버지 근우님의 특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청강도 가능하다는 말에 가도 될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과 삶, 진로에 관한 이야기'라는데 내가 듣는 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갔다. 지난해 열린 근우님의 전시를 인상적으로 봤기 때문이기도 했고, 강의실의 분위기를 오랜만에 느끼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삼십대의 사회인은 오후 수업을 들으러 대학교로 향했다.
결과적으로 가길 정말 잘했다. 최근에 들은 그 어떤 강연보다 좋은 자극이 되었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두 시간여 시간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유려하게 해내는 내 또래를 보고있자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삶을 저렇게 정리해서 이야기할 수 있나 되돌아보게 됐다. 또 삶을 진지한 태도로 마주하는 것과 별개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어느 정도까지 솔직하게 말할 것인가도 고민되었을 텐데 결핍을 스스럼없이 말하는 용기와 자신감이 멋있고 부러웠다. 한 사람이 차분히 정돈해온 진솔한 고민들을 편안하게 앉아서 듣고 있자니 고마워서 뭔가 되갚고 싶어졌다. 자발적으로 후기를 남기겠다고 약속했다.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잘 알기란 쉽지 않다. 나의 기질은 어떤지, 나는 무얼 할 때 행복한지,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진지한 시간은 꽤 지루하고 피곤하다. (쇼츠나 릴스를 보는 것과 다르게 주의 집중이 필요하고, 주체적인 활동이니만큼 피로가 동반된다.) 나를 알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당장 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보이)기 때문에 미루기도 쉽다. 주변 사람들이 사는 대로 따라 해도 겉으로 큰 문제는 없어 보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자신을 잘 모르면서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지낼 수 있다. 다만 그러다가 문득 공허할 때가 있다. 나 진짜 왜 살지? 어떻게 살고 싶지? 생각이 들 때가 그렇다.
근우님은 자부심, 결핍과 극복이라는 키워드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스스로에 대한 증명, 역할과 쓸모를 치열하게 고민한 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근우님의 삶의 조각들 중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는 아버지에게 받았던 '신뢰'였는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고개를 자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타국살이를 시작하면서 아버지는 열네 살 소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근우야. 잘 들어. 앞으로 네 삶은 네 거다. 선택도 네가, 그에 따른 책임도 너의 몫이야." 내가 십 대 때 나의 부모님도 이와 비슷한 말을 건넸다. '너의 삶은 너의 몫이라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가능한 도와주겠지만 결국 네 삶의 주인은 너라고.'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고 싶었어요." 오? 나도 그랬는데? 비슷한 생각을 가져본 적 있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이야기였다. 근우님은 이걸 결핍이라고 정의했다. 사실 '결핍'이라는 정의를 통해 듣기 전엔 비슷한 경험을 가졌지만 이에 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어쩌면 결핍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그걸 채우기 위해 이러저러한 시도를 했을 수도 있겠다로 생각이 이어지니 내 삶의 어떤 부분들도 이해되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가 우리를 키워왔던 거구나. 내가 원하는 걸 찾으려고 더 노력해왔던 시간들에 이유가 하나 붙여졌다.
이날 수업에서 받은 인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시간이 만든 단단하고 깊음.' 근우님은 사진 찍는 것이 좋다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내가 사진을 왜 좋아할까를 파고들어 그 안의 '이타심'이라는 기질을 파악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군가의 박자를 기록한다. 잘할 수 있는 걸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이건 일을 대하는 태도와 연결되는데, 근우님은 해야 할 만큼의 일이 끝나고 나서 '알파'의 무언가를 제안하는 편이다. "좀 더 해봐도 될까요?"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만, 끝의 끝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본다. 그리고 그건 때때로 또 다른 기회와 결과를 불러온다. 이때 요구 밖의 무언가를 제공하는 계기는 이를테면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는 이타심이다. 이렇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의 덕목을 하나 배웠다.

두 시간여 동안 근우님의 엇박의 나이테를 따라가면서 '내 박자는 내가 규정하는 것'이라는 걸 새삼 다시 마음에 새긴다. 엇박으로 인해 또 다른 정박이 만들어지는 게 삶이라고. 결국 산다는 건 자신의 서사를 만들고, 그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이라고. 친구들이 성장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인정하면서 나도 친구의 성장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근우님의 태도에서 건강한 마음도 배웠다.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유난히 더 삶에 진심인 사람들이 주는 푸릇한 에너지가 좋다. 나도 늘 푸른 사람이고 싶다.